증강현실,
미래 상용화 가치를 내다 보다

이요훈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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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에게서 듣다

“AR 보급에는 아직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반드시 보급할 것이다. 대규모 형태로 보급됐을 때, 다시는 AR 없는 생활 같은 건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 2016년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애플 CEO 팀 쿡을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에서 그가 강조한 기술은 증강현실 기술이다. 말뿐이 아니었다. 2017년 아이폰에서 증강현실을 간단히 구현할 수 있는 ‘ARkit’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에 팔려나간 아이폰 7억 대를 증강현실 기기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AR은 여전히 ‘포켓몬 고’ 게임을 할 때나 유용하며, 사람들은 아이폰에서 그런 기능을 쓸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 팀 쿡이 틀린 걸까?

떠오르는 AR·VR 산업

시장은 차가운데 전망은 뜨겁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증강현실 시장은 500억 달러(약 5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운터 포인트 리서치는 그보다 빠른 2021년에 6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가장 최근 공개된 디지 캐피털의 AR/VR 산업 시장 예측 보고서에서는 AR 산업이 향후 5년 안에 850억~950억 달러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2017년 AR 시장이 10억 달러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는 셈이다. 팀 쿡이 맞았다. 증강현실은 우리 삶을 바꿀만한 힘을 품고 있다. 그 힘은 스마트폰보다, 산업용 시장에서 먼저 꽃피울 가능성이 크다.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AR/MR 기술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은 현실 세계 위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씌워서 보여주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에서 볼 수 있는 괴물 포획 화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슈트를 착용했을 때 보이는 화면도 AR이며, 전투기를 조종할 때 보이는 HUD 화면도 일종의 증강현실이다. 스포츠 중계 시 중간중간 보이는 가상 광고도 증강현실 화면인 경우가 많으니, 우리는 이미 AR 기술이 널리 쓰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냥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AR 기술을 썼다고 받아들이는 분야는 주로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다. 최근에는 의료, 관광, 제조, 건설, 토목, 운동, 미용, 교육, 소매업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조금 복잡하게 여겨지지만, MR이란 개념도 있다. Mixed Reality의 약자로, AR이 현실에 나타난 컴퓨터 그래픽 화면을 혼자만 볼 수 있다면, MR은 여러 사람이 같은 그래픽을 각자의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두 개념 모두 현실에 그래픽을 씌운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MR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실제 산업 현장에서 좀 더 유용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일본 도요타에서는 설비를 제작하기 전에 먼저 MR을 이용해서 검토한다. MR을 이용하면 실제 제품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제품을 실공간에는서 가상으로 보여줄 수 있다. 한자리에 모인 실제 사용할 작업자들은 다 같이 MR 헤드셋을 쓰고, 사용할 때 어떤 느낌일지,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며 ‘체험’한다. 굳이 시제품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이 상태에선 손이 닿지 않는다”, “이 위치는 작업하기 힘들다”라고 말하면서 설계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고 한다. MR이 설계도와 현실 사이의 인터페이스,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때 작업자 몸에 센서를 부착해 몸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를 측정하기도 한다.

일본 코야나기 건설은 MS사와 함께 ‘홀로렌즈’ MR 헤드셋을 이용한 ‘홀로스트럭션(Holostruction)’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MR을 이용하면 설계가 끝난 건축물을 실제 크기로 미리 볼 수가 있다. 짓고 있는 건축물이 어떤 모습이 될지 현장에서 미리 확인할 수도 있다. 같은 영상을 네트워크로 전송해 여러 사람이 같은 모습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발주자와 시공업체가 원활히 소통할 가능성이 커진다.

‘DAQRI 스마트 헬멧’은 건축·건설업에 특화된 AR 장치다. 이 헬멧을 쓰고 건설 현장에 가서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축물을 본다거나, 건축 중인 건물의 전기 배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코노이케사는 AR 기술을 이용해 터널을 유지 보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태블릿 화면을 터널에 비추면, 미리 저장된 데이터를 터널 표면에 비춘다. 이를 통해 터널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왜 문제가 생겼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AR은 투시 기능 기술로 이용된다. 앞으로 이런 시스템이 보급되면, 공사하기 전에 땅 밑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현실에 들어오는 AR 기술

AR/MR 기술을 사용하는 곳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슈나이더 일렉트릭에서는 ‘슈나 AR 어드바이저’라는 에너지 관리 서비스를 발표했다. 사물 인터넷(IoT)이 융합된 AR 기술로, 공장이나 플랜트에서 가동되고 있는 다양한 기기나 설비 등에, 태블릿 화면을 비추기만 하면 사용 설명서나 도면 등을 바로 불러내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기 캐비닛 같은 설비는 굳이 열지 않아도 점검할 수 있다. 도시바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이쪽은 ‘AR 콘텐츠 제네레이터’란 이름으로 직접 AR 용 매뉴얼 등을 만들 수 있는 앱을 제공하며, Vuzix 사와 개발한 AR 안경 ‘다이나엣지’도 함께 공개했다.

지난 2012년 공개되어 많은 기대를 받았던 AR 글래스, 하지만 실제 출시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구글 글라스’도 2017년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이란 이름을 달고 돌아왔다. 그동안 GE, 보잉, DHL, 폭스바겐 같은 기업에 공급되어 실제 테스트를 거친 모델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휴먼 에러(Human error)’를 줄이고, 작업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GE에선 설명서를 바로 찾아보는 용도로, 농기계를 만드는 AGCO에서는 제품 생산 도우미로, DHL에선 창고 재고 파악용으로, 병원에서는 의무 기록 확인용으로 쓰였다. 이후 등장한 서비스나 AR 글래스는 대부분 구글 글래스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의 실증 실험 결과를 참고했으니, 애플 ARkit 공개, 구글 AR 코어 발표와 함께 지난 2017년 말부터 불고 있는 AR 산업에 대한 투자 붐을 끌어낸 장본인이라고 봐도 좋겠다.

의료 현장에서도 쓸 수 있다. ‘홀로아이즈’라는 AR 시스템을 이용하면 수술하면서 환자의 신체 정보를 360도 돌려가며 볼 수 있다. 몸속을 투시한다거나, 치료 후 치아의 모습을 미리 보는 용도로도 쓰일 예정이다. 관광용으로도 사용된다. 이미 사라져 버린 고성이나 몇백 년 전 풍경, 공룡이나 로봇을 보여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재해 체험 및 훈련용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Disaster Scope’와 ‘홍수 AR’ 앱을 이용하면 내가 서 있는 장소가 침수되거나 불이 났을 경우 어떻게 변해 가는지 체험할 수 있다.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서는 수화물 운반 작업자들에게 화물 컨테이너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 스마트 글래스를 사용한다. 비컨 같은 지역 센서와 연결해 위험 지역을 알려준다거나,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그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다. ‘Blocker’라는 앱을 이용하면 영화 촬영 전 배우 위치와 동선을 미리 확인해 볼 수가 있고, 엣지비스(Edgybees)에서는 드론으로 전송된 화상에 도로명 정보 등을 표시해 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AR, 표준화가 필요하다

산업용 AR은 ‘필요한 정보’, ‘보이지 않는 내부’, ‘실제로는 없는 것’을 ‘보는’ 용도로 쓰인다. 이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얻거나, 실수를 줄이거나, 시제품을 테스트하거나, 협업하거나, 교육한다. 현실과 컴퓨터 데이터를 연결해주는 역할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실용성을 검증하는 단계다. 투자도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플랫폼이나 기술 분야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모니터 속의 상품을 보는 것과 눈앞에 실물 크기의 상품이 놓여있는 것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산업에 적용되면 제조 프로세스나 일하는 방식 자체가 극적으로 바뀐다. 변화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험인증 과정에 적용될 경우 대량 생산 전에 미리 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지 검토하거나, 장래엔 가상 인증 형식으로, 제품 데이터를 먼저 보내 선인증 받는 식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플랫폼과 데이터다. 아직은 AR 기기나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불러와 현실 이미지와 매칭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산업용으로 널리 보급될 경우 공개된 플랫폼이나 표준화된 데이터가 없다면 특정 플랫폼에 제조, 실험, 교육 과정이 발목 잡히는 문제가 발생한다. 생산성과 안정성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할 대량의 공공 데이터, 상업 데이터일 경우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앞으로 표준 데이터 형식을 마련하고, 데이터 개발 도구 및 라이브러리, 데이터베이스를 인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더불어 공공 가이드 라인에 맞게 데이터를 확보하고 교정했는지, 안전 문제는 없는지 주기적으로 시스템 자체를 인증받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선례로 봤을 때 많이 쓰이는 플랫폼에 맞춰서 모든 것이 정리될 가능성이 크지만, 공공 데이터를 취급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준비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요훈 IT칼럼니스트
경력사항
2017.5 ~ 현재 한양대미래인문학융합전공학부 IAB자문 교수
2013.06~현재 YTN 사이언스 '사이언스 투데이' 고정 출연
2016~2017년 네이버 오디오 클립 '자그니의 디지털 라이프' 제작
2016~2017년 한국과학기술영향평가원(KISTEP) 기술영향평가 전문위원
2010.10~2011.04 YTN 생생 경제 고정 게스트 출연
2010.04~2010.10 YTN라디오 YTN 매거진 활동.
2009.11~2010.04 YTN 뉴스 집중 분석
저서
디지털 세계의 앨리스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2, 여기 사람이 있다 등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