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에게서 듣다 미래 '생산기술 대전환' 시동 걸린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상목 원장
스페셜 ON TOP 인터뷰
생태계는 생물적 요소와 비생물적 요소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살아 숨쉬듯 변화한다.
우리가 산업을 '생태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노동, 기술,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밀접한 연관 관계속에 상호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적응하는 것이 산업 생태계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1966년 한국정밀기기센터가 발족한 이래 한 지붕아래 함께 성장하였으며,
서로가 독립한 지금에도 여전히 긴밀한 협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 생산기술의 대전환, 지방소멸 그리고 이상기후와 같이 산업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 대처해 나갈 해법을 듣기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상목 원장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KTL TRUST 독자들께 인사와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상목 원장
KTL TRUST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은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실용화기술 개발·지원을 통해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 출연연구기관입니다. 1989년, 자체 청사도 없이 출범해 35주년을 맞은 현재 3연구소, 7지역기술실용화본부를 운영하는 제조혁신 지원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취임 후 기관의 비전을 '생산기술 대전환'으로 설정하신 배경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조업을 둘러싼 변화입니다. 변화는 크게 인구변화, 환경변화, 패권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구변화로 인해 줄어드는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환경변화와 관련해서는 탄소배출, 탄소중립, 수소사회 전환과 같은 빅 이슈에 대비해야 하고, 패권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변화에 맞춘 제조업 발전 전략 없이 예전과 같은 방식을 고집해서는 제조업의 미래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국내 제조업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65만 개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5%에 불과합니다. 금융비용 등을 포함해 순이익을 계산해보면 실제로는 대부분 마이너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조업 종사자도, 우리 제조업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생산기술 체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판단하고, 생기원의 비전을 '생산기술 대전환'으로 새롭게 수립했습니다.

미션과 핵심가치도 바꾸셨는데요, 어떤 개념인지 궁금합니다.

비전이 'What'이라면, 미션은 'Wh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기술 대전환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 즉 미션은 우리 '제조산업 전체의 가치 고도화' 필요성 때문입니다. 국내 제조업은 이제 고임금 국가형 제조산업 전략으로 가야 할 시점입니다. 고임금 국가형 제조 산업이라면, 젊은이들이 일자리,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올바른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창출돼야 합니다. 핵심가치는 거기에 이르는 방법론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연구력 강화에 집중해 왔는데, 전문성만으로는 안 되고, 전문성 네트워크로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제조업이 겪는 현실을 관찰해서 현안을 도출하고, 도출된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된 방안을 확산하는 임무를 수행해야만 국민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기원의 인사평가도 전문성(70점), 네트워크(30점) 항목을 직종별로 세분화시켜 평가하는 등 전문성 네트워크를 기관 업무 전반에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말씀하신 내용들을 반영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올 초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앞서 지난해 6월 취임 직후 3개 행정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생기원 전 구성원의 인재화를 위한 '인재혁신추진단', 지역과 소통하면서 지역산업을 재생하기 위한 '지역혁신추진단', 이러한 성과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소통하기 위한 '조직성과홍보단'입니다. 또 안전·보안·청렴을 기본 의식으로 정하고, 관련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이후 6개월 동안 다양한 소통과 논의를 거쳐 비전·미션·핵심가치를 확정한 후 1월1일 큰 폭의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입니다. 개편 방향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가 '생산기술 대전환'이고, 둘째는 '메가 프로젝트 조직'을 구성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기업협력 네트워크 구축'입니다.

생산기술 대전환은 앞에서 설명해 주셨는데, ‘메가 프로젝트 조직’은 생소합니다.

3연구소 7지역기술실용화본부의 역할을 메가 프로젝트 중심으로 재편한 것인데요. 아시다시피 지역소멸 현상이 심각합니다. 인구 10만 도시라고 가정할 때 4만6,000명이면 도시 기능이 마비된다고 하는데, 현재 6만 명이 붕괴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기원이 보유한 1천여 개 기술이 지역에 직접적인 브리지(Bridge) 역할을 하고 있는지 엄밀하게 분석해 봤습니다. 그 분석을 토대로 지자체가 추진하는 산업전략, 기업 등 지역 생태계 분석, 생기원이 운영 중인 지역조직 역량, 그리고 해당 지역의 특화 먹거리 비전을 세웠습니다. 이 네 가지 전략을 바탕으로 생기원의 3연구소, 7지역기술실용화본부, 즉 10개 지역본부별로 한 가지씩 메카 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메가 프로젝트는 기술, 예산, 인력의 세 가지 관점에서 메가입니다.
첫째는 이전까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기술들을 지역의 산업생태계를 지향하는 하나의 큰 기술 집합체로 키우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관 자체 예산만이 아니라 지자체와 매칭 펀드를 만들어 지역산업 전체에 효과를 전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은퇴한 고경력자, 외국인 근로자, 제조산업에 오지 않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대학, 테크노파크, 지자체가 협력해 새로운 교육을 실시하는 그림입니다.

메가 프로젝트, 즉 제조업 발전만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제조업 발전만으로는 지역소멸을 막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제조업을 제외하면 농업, 어업, 축산업 등이 다 비제조업이니까요. 그래서 생기원은 디지털 뿌리기술 기반 농업기술·수산업기술·축산업기술을 개발하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인력은 KOICA와 연계해 현지에서 외국인을 교육시키고, 인적성 검사를 통해 우수한 인력들을 들어오게끔 해서 우리 농가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생기원이 구축한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토지, 수량, 기후, 품종 등 맞춤형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매일 전송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몇 년간 일한 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 장래 농업 지도자로 성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디지털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죠. 농업은 쌀농사에 특화된 베트남이나 라오스, 수산업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축산업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선발하는 방식으로 우리 농어촌의 인력부족을 해소하고, 2차산업인 제조업과 1차산업인 농축수산업을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탑재된 스마트팜 로봇이나 농기계, 장애인이 활용할 수 있는 기구 등 다양하죠. 물론 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제품을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품을 기반으로 가치를 공유한다는 의미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려요.

우리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에 골몰해 왔는데, 이제는 ‘제조산업에서 산출되는 제품을 기반으로 한 가치를 공유한다’는 관점으로 확장하는 것이 제조업의 미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쉬운 사례로 John Deere는 디지털 트랙터를 판매하던 미국의 농기계 회사입니다. 이제는 땅, 면적, 작물종류에 따른 최적의 경작법을 컨설팅하고, 인공지능 제초제 살포, 경작 자동화, 농사 작업계획 수립 및 의사결정 지원 등을 서비스하는 기업으로 변신했습니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종합 농업솔루션 기업으로 업을 바꾼 것입니다. 이처럼 제품을 기반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거나 변경할 수도 있지만,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가치를 고도화하는 방향도 있습니다. 즉, 단순 부품을 공급하는 단계가 아니라 모듈이나 어셈블리로 가공해서 조립 가능한 형태로 납품하든지, 완제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죠. 문제는 이렇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업이 규모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전체 65만개 중소기업 가운데 200인 이상 기업이 0.3%가 되질 않습니다. 독일 제조업의 핵심이라고 하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의 평균 근로자 수가 600명인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죠.

이와 관련한 생기원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네, 생산기술 대전환, 메가 프로젝트 조직에 이은 세 번째 개편 방향 ‘기업협력 네트워크 구축’입니다.

지금까지 생기원은 30년 넘게 기업지원 활동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기업들의 생산 기술력이 연구소에 앞서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수혜적으로 기업을 지원한다는 관점에서 탈피해 수평적 관점에서 생산 이외에 기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지원해주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생기원과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제조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물건을 사줄 수주 기업입니다. 따라서 수주기반의 납품이 이뤄질 수 있도록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설계 기업, 금융기업, 금형기업을 연결시키고, 마지막 단계에 완제품 제조기업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생기원의 전문가들은 수주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빠른 시간 내 개발해 완제품 생산단계에 적용될 수 있도록 투입・지원하고, 평가와 인증 등 수출에 필요한 전 과정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즉,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도록 지원해준다는 뜻이네요. 기업과의 협력 네트워크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이상목 원장
맞습니다. 수주기업의 요구사항이 있고, 이를 실현할 기업들을 연결하고, 필요한 기술과 인증 등의 지원이 맞물리는 협력 네트워크가 바로 디지털 플랫폼의 핵심입니다. 이 플랫폼 안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 전 해결방법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3월까지는 설계 구조변경이 필요하다, 5월까지는 인증 신청을 해야 한다는 식의 사전 안내가 이뤄지는 것이죠. 예전에는 기업이 일을 하다 애로사항이 생기면 기관에 문의하고, 해법을 기다려야 했다면 이제는 발생 가능한 문제를 사전에 안내 받고, 해결방법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KTL과의 협력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제는 제품 전체 제조라인에서 인증 및 규격화, 표준화 같은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플랫폼 안에 KTL이 함께 참여해 제품의 여러 가지 시험평가나 인증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 인간중심의 협동로봇(코봇)개발, 인공지능의 제조업 적용기술 등 실용화 단계에 꼭 필요한 인증 과정에도 KTL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생기원의 해외 국제협력센터와 KTL 해외사무소가 연계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데도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구기관의 영역을 굉장히 확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까지는 연구비를 받아서 논문을 쓰는 것이 연구기관의 활동이었습니다. 인풋(예산)에 대한 아웃풋(논문)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던 셈이죠.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국민들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방식입니다. 아웃풋에서 멈추지 않고 아웃컴, 즉 이 논문으로 생산성이 얼마 향상되었다는 식의 실현가치를 전달해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임팩트까지 줄 수 있어야 해요. 성장률 몇 퍼센트보다 한 달 소득 얼마가 증가했다는 표현이 더 임팩트 있게 와 닿지 않겠어요? 이것이 앞으로 연구기관이 가져야 할 시대에 맞는 책임의식,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앞으로 생기원의 목표 혹은 다짐의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이상목 원장
지난 30여 년간 ‘생산’ 영역에서 기술 개발을 거듭해 왔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이 기능에 더해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스마일 생산기술을 캐치프레이드로 내걸었는데, 앞에서 설명 드린 ‘제품을 기반으로 한 가치를 공유한다’가 바로 스마일 곡선에 담겨 있습니다. 제조업 전주기의 가치사슬을 좌표평면에 표시해 보면 크게 U자 형의 곡선이 만들어집니다. 부가가치가 높은 좌우 양쪽 구간은 제품 설계나 서비스의 영역이고, 가운데 가장 낮은 부분이 ‘생산’ 영역이에요. 제조서비스 부분은 영업이익도 높고 지속적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하지만, 주로 중소・중견기업이 활동하는 생산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익창출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U자형 곡선이 마치 사람의 입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스마일 생산기술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추구하는 것도 사실 기술 개발보다는 IoS, 즉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아키텍처 상에서 제품에 대한 서비스 확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제조업도 이 같은 방식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부품 공급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또 각각의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던 관점에서 제품을 기반으로 한 가치를 공유하는 관점으로 산업 영역을 바꿔야 합니다. 생기원이 이러한 제조산업 가치 고도화의 맨 앞자리에 서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조직성과홍보단 유윤형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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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Vol.43
March | Apr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