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기술 그라운드 100% 우리 기술로 완성한
K-모듈러 건축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중고층 모듈러 연구단
배규웅 연구단장
테크 LAB K-기술 그라운드
모듈러(modular) 건축공법은 건축물 전체 또는 일부를 3차원 공간으로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고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일반 건축 대비 공사기간 단축과 폐기물 저감 등 친환경 효과가 입증되며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책사업을 통한 10년여의 연구 끝에 100% 우리 기술로 13층 철골모듈러 아파트의 표준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모듈러 건축 기술 자립화 위해 설립

지난 6월 27일 13층, 106가구 규모의 중고층 모듈러 주택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의 준공식이 열렸다. 국토교통부가 지원하고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발주한 국가R&D 실증사업으로 지어진 국내 첫 중고층 모듈러 주택이다. 이 건축 기술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중고층 모듈러 연구단이 10년간 연구개발한 성과이기도 하다. 연구단 이름 그대로 10층 이상의 중・고층 건축물을 모듈러 건축기술로 만들기 위한 국책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되었다. 이후 10년여의 연구기간을 거쳐 올해 드디어 그 결실을 맞이한 것이다. 특히 100% 우리 기술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201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으로 모듈러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어요. 당시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이 분야의 선진국이었죠. 국가차원에서도 차세대 건축기술이라 생각해 자체 기술력을 갖춰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저희 연구단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작은 험난했다. 우선 모듈러 건축에 대한 아무 지식도,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진국 기술을 벤치마킹하려고 해도 정보를 얻을 길이 막막했다. 연구단을 책임지고 있는 배규웅 연구단장 역시 40년의 건축 구조공학 전문가임에도 모듈러 건축은 개념부터 달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작정 해외 기업을 찾아가서 만나달라고 떼를 써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좋으니 정보를 달라고 부탁도 해봤지만 정말 매몰차게 쫓겨나기 일쑤였어요.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저희 스스로 알아내고, 개발해낼 수밖에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얻은 기술이기 때문에 더욱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세계 모듈러 건축시장은 2022년 기준 약 12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업계에선 모듈러주택 시장이 2030년까지 약 2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내 건축법상 내화기준(장시간 화재에 견디는 것이며 화재 뒤에도 작은 수리에 의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은 무척 까다로운 편이라 국내 기준만 통과하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중고층 모듈러 연구단 배규웅 연구단장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중고층 모듈러 연구단 배규웅 연구단장

건설업계 신성장 동력이 될 ‘모듈러 건축’

공장에서 미리 모듈을 만들고 공사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모듈러 건축은 건설업계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다. 모듈러 건축에는 골조에 모듈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거나 붙이는 ‘적층(積層) 방식’과 모듈을 일반 구조체 안에 서랍처럼 끼워 넣는 ‘인필(infill) 방식’이 있고, 구조체 재료에 따라 철골 모듈과 콘크리트 모듈, 목조 모듈 등으로 나뉜다. 방식과 재료에 따라 장단점이 있지만 모듈러 건축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건축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그리고 폐기물 저감과 같은 친환경 요소 때문이다.
라멘식(적층) / 벽식(적층) / 인필(INFILL)식
“아직은 용인 영덕과 같은 철골모듈러 공법은 기존의 RC공법(거푸집을 짜서 콘크리트 부어 넣고 굳히는 방식)에 비해 공사기간은 단축되지만 공사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요. 다만 대량 생산체계만 갖추게 되면 획기적인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모듈러 주택은 건설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도 효과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건설 사고로 매년 50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데, 상당수가 추락사고 사망자에요. 모듈 작업은 대부분 모듈을 쌓는 해당 층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추락 위험도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건물을 해체할 때에도 모듈을 재사용할 수 있어 건설 폐기물 발생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선해야 되는 문제점도 있다. 바로 주거환경 성능에 대한 부분이다. 주거환경은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소음, 진동, 온도, 기밀 등을 말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층간소음이다. 기존 RC공법은 중량충격음에서도 1등급 수준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데 비해 철골모듈러는 아직 이 부분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어 향후 해결과제이다.
“내화기준이나 내진 안전성 등은 우리나라 기준이 그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기 때문에 이미 저희 기술은 이에 부합하고 있어요. 특히 내진 안전성은 15층 이상 얼마든지 가능한 수준임을 검증 완료한 상태입니다. 다만 완공 이후 주거환경 성능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가격 경쟁력과 기술 고도화를 통해 이러한 부분까지도 성능향상이 이뤄져야 철골모듈러 아파트가 대중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 이미지

세계 시장 경쟁력 강화 위해 더 노력할 것

콘크리트 모듈의 경우 싱가포르는 이미 56층까지 쌓아올렸다. 철골 모듈의 경우 영국 런던에 50층 규모가 세워졌다. 우리 역시 충분히 가능한 기술을 갖췄다는 것이 배규웅 단장의 설명이다. 다만 주변 인프라가 아직은 미흡한 단계라는 것.
“용인주택이 13층에 그친 것은 일단 위치한 부지 상황이 주변 건물들의 일조권 침해 등에 저촉되지 않도록 높이제한이 있었는데 철골모듈의 경우 층과 층사이의 층간대(아래층 천장부터 위층 바닥까지의 높이)가 RC공법 및 콘크리트 모듈과 비교할 때 현격히 높아서, 당초 15층을 지을 수 있었지만 13층으로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모듈을 쌓는데 사용되는 크레인은 보통 25톤 정도를 들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이동식 크레인만이 이정도 무게를 15층 높이까지 들 수 있어서 15층 이하로 층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높이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실제 거주하는 사람, 즉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은 주거환경이 우수한 모듈러 주택을 만드는 기술이 진짜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배 단장은 집은 싸고, 안전하고, 쾌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거환경 성능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모듈러 주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높이 쌓는 기술 그 다음을 고민하고 있는 연구단의 K-모듈러 건축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민간기업의 개발로 구축해온 성과인데 반해 우리는 국가 R&D 연구과제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정부기금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인만큼 연구단은 이 모든 기술성과를 민간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현장 적용에 필요한 컨설팅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10년 동안 정부기금으로 연구한 기술이므로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편타당한 기술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희 연구단의 모토입니다. 현실적으로 시장의 후발주자인 상태에서 기업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국가가 표준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기업이 이를 활용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국가 R&D 시스템을 무척 부러워해요.”
연구단은 국내 기업 누가 제작, 시공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범용성을 확보하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었다. 그 결과, 그대로 적용하거나 약간의 설계 변경만 거치면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수준의 표준화 기술을 완성했다. 앞으로도 여타의 모듈 제작사와 시공사에도 모든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더불어 선진국 수준의 초고층 모듈러 건축 기술을 확보하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K-모듈러 공법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연구단의 최종 목표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연구본부 배규웅 선임연구위원
031-910-0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