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사람 ‘암 수술’의 새로운 패러다임; 수술실로 들어간 현미경 브이픽스메디칼
초소형현미경 비침습검사 디지털생검
수술 한 번으로 암 조직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 너무 당연하지만, 여전히 20~30%의 환자가 재발을 경험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브이픽스메디칼은 ‘조직을 병리과로 보내던’ 기존 방식을 뒤집어, 초소형 현미경을 수술실로 들여보내는 디지털 생검(biopsy)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검체가 아니라 현미경이 환자에게 간다

황경민 브이픽스메디칼 대표가 처음 문제의식을 느낀 지점은 ‘성공적인 암 수술’의 정의에서 시작된다. 정상 조직은 최대한 남기고, 종양 조직만 남김없이 제거하는 것. 누구나 동의하지만 실제 수술 현장에서는 쉽지 않은 목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 때문에 암수술은 언제나 “혹시 정상 조직에도 암세포가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그 결과, 환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절제된 장기, 그리고 20~30%에 이르는 재발률이라는 무거운 숫자를 마주하게 된다. 황 대표는 “재발 때문에 다시 수술을 권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환자에게 너무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분명했고, 해답은 ‘수술 중 실시간으로 세포 수준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였다.
브이픽스메디칼이 개발한 장비는 바로 그 해답을 겨냥한 초소형 현미경이다.
기존에는 조직을 떼어 슬라이드로 만들고, 병리과에서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15~30분은 필요한 과정이다. 이제는 반대로 현미경이 환자에게 다가간다. 의심 부위에 장비를 접촉하면 세포 단위 이미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조직을 훼손하지 않은 채 비침습적으로 검사가 가능하다.
특히 중요한 혈관이나 신경, 정상 뇌처럼 ‘함부로 떼어낼 수 없는 곳’에서 이 장점은 극대화된다. 로봇 수술에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장비를 소형화해 복강경 수술용 트로카를 통해 투입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촉각을 대신할 수 있는 고해상도 영상 장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로봇 수술 환경에서, 브이픽스메디칼은 새로운 필수 장비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지털 생검 플랫폼으로의 확장

이 초소형 현미경 기술은 황 대표의 박사 학위 연구에서 출발했다. 카이스트에서 진행된 연구가 신경외과 교수의 문제 제기를 만나면서, 논문 속 기술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요구되는 솔루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술이 있으니 활용처를 찾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만들자”는 출발점이었다.
브이픽스메디칼이 첫 타깃으로 선택한 암종은 뇌종양이다. 정상 위를 조금 더 절제하는 것과, 정상 뇌를 절제하는 것 사이의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 정상 조직 손상이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실시간·비침습 진단의 가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분야가 뇌종양 수술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공동 창업자의 신경외과 전문성과 학회 차원의 협력이 더해지며, 첫 번째 적응증(Indication)이 정해졌다.
현재 브이픽스메디칼은 뇌종양 수술에서 최소한의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하고, 전립선암·위암·두경부암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삼성서울병원, 보라매병원 등 국내 주요 병원과 함께 임상을 진행 중이며, 향후에는 항암 치료 효과 평가, 신약 개발 지원 등 수술 전·후 영역까지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기술 구조도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에 가깝다. 본체 한 대에 암종과 수술 접근법에 따라 다양한 프로브를 탈부착하는 방식이다. 뇌종양, 폐암, 위암마다 필요한 길이·두께·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브 설계만 바꾸면 여러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AI를 접목해 촬영자와 진단자를 돕는 기능을 더하는 것이 다음 세대 전략이다. 결국 브이픽스메디칼이 꿈꾸는 것은 수술실·외래·병리과를 데이터로 연결하는 ‘디지털 생검 플랫폼’이다.

규격이 없던 새 기술, 함께 길을 만들다

완전히 새로운 의료기기는 기술만으로는 시장에 나갈 수 없다. 제품 개발, 식약처 인허가, 신(新)의료기술평가, 수가(酬價) 확보까지 길고 복잡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브이픽스메디칼처럼 기존에 없던 형태의 장비는, 시험·인증 단계에서부터 “어떤 규격을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브이픽스메디칼이 KTL과 처음 손을 잡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국제 규격을 다루는 의료기기 안전 시험기관인 KTL은 장비의 전기·기계적 안전성 시험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이 규격을 이 제품에는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고민을 함께 나눴다. 황 대표는 “규격대로만 기계적으로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이해하고 해석해 주는 과정에서 사실상 공동 개발자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이다 보니, 안전성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항목까지 과하게 요구받는 상황도 있었다. 그때마다 KTL은 규격의 취지를 설명하고, 실제 환자 안전과 연결되는 합리적인 요구 조건을 함께 정리해 갔다. 동시에 해외 진출을 위한 인허가 컨설팅, 국제 규격 해석 지원 등 ‘글로벌 무대’를 염두에 둔 지원도 병행했다.
브이픽스메디칼은 지금, 국내에서 기본적인 임상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고 첫 제품 출시를 앞둔 시점에 서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향해 있다. 수술 중 디지털 생검이라는 아직 선점자가 없는 틈새시장에서, 국산 기술로 세계 기준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결국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도(正道)를 가는 것뿐”이라는 황 대표의 말처럼, 브이픽스메디칼과 KTL의 협업은 ‘환자 안전’과 ‘기술 신뢰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암 수술의 판도를 바꾸려는 이 도전이, KTL의 시험·인증 역량과 만나 어떤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갈지 기대해 볼 만하다.
2026
Vol.54
January | Febru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