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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L 독립과 성장의 전환점을 만든 홍종희 前 원장 인터뷰
독립·조직개편·신사업… KTL 전환의 결정적 순간들
다음 60년, “국내가 아니라 세계를 봐야 한다”
조직은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방향을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지고 밀어붙여야 한다. KTL의 독립, 조직 개편, 그리고 미래 사업의 씨앗까지. 홍종희 前 원장은 짧은 3년 동안 기관의 체질을 바꾸는 선택을 이어갔다. KTL 60주년을 맞아, 그가 직접 들려준 ‘그때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홍종희 前원장은 2005년부터 3년간 KTL을 이끈 제11대 원장이다.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현장 경험을 쌓은 뒤, 기술고시와 공직을 거치며 산업정책과 시험·인증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특히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부) 안전정책국장으로서 제품 안전과 제도 설계를 직접 다뤄온 그는, KTL의 구조와 역할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KTL 원장으로 응모할 때부터 KTL의 미래 발전 방향과 추진 전략을 수립하였고 직군 간 통합방안도 검토하였다.
“당시 KTL은 전임 원장 시절에 직원들이 원장실 앞에서 꽹과리를 치고 있어 원장이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모든 발전 전략은 노사협력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축해야만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는 부임 후 첫 조회에서부터 방식을 바꿨다. 전 직원을 모아놓고 공적기능 확대, 고객만족, 글로벌화를 핵심키워드로 제시했다. KTL이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사업 추진 전략은 무엇인지 등 직접 브리핑을 진행한 것이다.
“방향부터 딱 잡아줘야 일이 되는 거니까. 방향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자리입니다. 방향을 먼저 잡아주고, 그다음은 실행으로 가야죠.”
그의 방식은 단순하지만 강했다.
“방향은 명확하게 잡았으니 이제는 일을 해야죠. 무조건 실행은 빠르게. 일이 멈추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결재 때문에 일이 밀린다? 그건 조직이 잘못 돌아가는 거죠. 원장실 문이 열려 있으면 안에 누가 있든 들어오라고 했어요. 급한 일은 바로 처리해야 하고, 그래야 조직이 숨을 쉽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조직이 ‘버티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상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독립, 조직의 ‘존재 방식’을 바꾸다
KTL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는 2006년 독립법인 출범이다. 홍종희 前 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밀어붙인 이 변화는 단순한 조직 형태의 전환이 아니었다. 기관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부 부처, 이해관계자, 그리고 내부 조직까지 모두가 독립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조직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밖으로 나간다고 하면 반대하는 게 당연해요. 우리가 독립하겠다고 하니까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이런 분위기였죠. 결국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직접 가서 설득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는 국회를 직접 찾아다녔다.
“여야 의원 가리지 않고 다 만났습니다. 이 기관이 왜 필요한지, 왜 독립해야 하는지, 이걸 계속 설명하는 겁니다.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라는 게 쉽지는 않지만 결국 진정성이 있으면 통합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법제처였다.
“법제실장을 찾아가서 설명을 했는데 이야기를 쭉 듣더니 그러더라고요. ‘이건 독립해야 되는 기관이네요.’ 그 한마디 듣는 순간, 이제 길이 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때부터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만들어낸 ‘독립’은 KTL의 역할 자체를 바꿔놓았다. 독립법인 출범 전에는 업무의 성격이 전혀 다른 한국산업기술평가원의 부설기관이었기 때문에 KTL 명의로 직접 사업계약을 하기 어려웠고, 사업추진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발생하곤 했다. 그러나 독립된 지위를 획득한 이후에는 정부사업의 직접 계약, 신속한 사업 수행 등 정부 정책과 산업 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실질적인 실행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 홍 前 원장은 이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독립을 해야만 우리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맡아서 하는 기관인 만큼 자율성과 책임이 같이 있어야 하는데, 기관의 독립이 그 시작이었던 셈이죠. 이때부터 KTL은 환경, 의료,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며 지금의 종합 기술기관으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일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겁니다”
홍종희 前 원장의 방식은 분명했다.
“일이라는 건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닙니다. 필요하면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조직이 성장하려면 계속 새로운 일을 벌려야 합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움직였다. 필요한 사업이 있으면 먼저 구상하고, 그다음은 ‘설득’이었다. “예산이라는 게 가만히 있다고 내려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직접 가서 설명을 하는 겁니다. 왜 이게 필요한지, 이걸 하면 산업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걸 납득시켜야죠.”
그는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를 직접 찾아갔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규모의 예산이었다. “처음에는 5년 동안 100억 정도 필요하다고 설명을 했어요. 이건 단순히 기관 사업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필요한 시스템이다, 그렇게 논리를 만들어서 설득을 한 거죠.”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설명을 다 듣더니 ‘그거 100억으로 되겠어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합니다’ 했더니, 오히려 ‘200억 드릴게요’ 이렇게 얘기가 나온 거예요. 그만큼 필요성과 방향이 맞았다는 겁니다. 설득이 되면 예산은 따라옵니다.”
인력 확보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을 하려면 결국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인원을 한꺼번에 100명 늘려야 한다고 했어요. 당연히 전례가 없다고 안 된다고 하죠. 그래서 현실적으로 접근한 겁니다. ‘그러면 70명이라도 먼저 달라, 그걸로 시작하겠다’ 이렇게.”
결국 70명이 먼저 증원됐다. 이후 조직은 빠르게 재편됐다. “조직이라는 건 사람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일은 만들어 놨는데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만큼은 어떻게든 확보해야 합니다. 그게 리더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해외 진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휴대폰 기기를 만들어서 수출하는 나라니까, 이동통신 사업도 전망이 있겠다 싶었죠. 수출하려면 인증이 필요하니까 현지법인 사업소를 마련해야겠다. 시작은 미국이었습니다. 400여 개가 넘는 현지 통신사를 다 접촉하라고 했어요. 맨 땅에 헤딩하는 수준인데 그 정도도 안 하고 어떻게 길을 열겠습니까?”
그는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죠. 당시 미국 사업소를 책임지던 직원들의 노고는 말로 다 못합니다. 근데 그때는 그게 맞는 방법이었습니다. 기다리면 누가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직접 만나고 부딪혀야 기회가 만들어집니다.”
“국내에 머물면 한계가 온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국내에서 시험만 해주고 있는 걸로는 한계가 옵니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현재 KTL은 민간 시험기관과의 경쟁,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의 해법은 분명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따라가면 결국 밀립니다. 우리는 공공기관이라는 이점이 있잖아요. 남들이 못하는 것,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다 만들어진 기술을 시험하고 인증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지원사업을 가져오든 기업과 함께 개발에 참여하든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래야 기업도 살고, 우리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결국은 세계를 보고 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KTL은 국내외 기술 전문기관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세계 일류의 시험·인증기관이자 세계 최고의 시험·평가기술 보유기관이 되어 우리나라의 미래 신기술 산업 육성에 기여하는 중추적 기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계 시장은 단순히 기술 경쟁이 아니라 기준 싸움입니다. 누가 표준을 만드느냐죠. 앞서 언급했던 미래 기술 개발과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국내 경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차별적 영역 확보’가 중요합니다. 미래 기술, 국가 간 인증 연계 등을 통해 시장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래야 기관도 살아남고, 역할도 더 커집니다.”
결국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내에서의 안정적인 역할을 넘어 글로벌 시장과 미래 기술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KTL의 다음 60년을 결정할 방향이라는 점이다.